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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골프이야기

<골프> 오늘 라운드는 "공포" 다

by 골프엔맛집 2026.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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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발 나는 아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그 악명 높은 '진짜 공주님' 네 분 오늘 라운드는 공포다.
골프 치기 딱 좋은 화창한 월요일 아침이었는데, 이 네 분을 제 카트에 모시게 된 순간…. 제 눈앞은 푸른 잔디가 아니라 가시밭길처럼 변해버렸답니다.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플레이어가 움직이기 싫어하면 캐디는 온몸의 진이 다 빠지거든요.
클럽 하우스 문턱을 넘을 때부터 18번 홀아웃을 할 때까지, 걷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네 분의 상전 공주님들을 모시고 제가 어떻게 18홀을 눈물겹게 완주했는지, 그 생생한 '극한 직업' 캐디 스토리를 대화하듯이 풀어드릴게요. 한숨 한 번 크게 쉬고 들어보세요!

 

오늘은 워치형 보이스캐디 배터리가 충분한지 한 번지 더 확인 하고 근무해야겠다.

 

#1. 스타트 광장에서의 대치, "언니, 나 카트에서 안 내릴래"
오전 9시,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살랑이는 그 완벽한 날씨에 제 카트 앞으로 터덜터덜 걸어오시는 네 분의 공주님들. 표정부터가 이미 '나 여기 억지로 끌려왔다 온몸으로 말하고 계시더라고요.
첫째 엘사 공주님은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눈 밑까지 꽁꽁 싸매고 양산부터 펼치셨고, 둘째 안나 공주님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카트 시트에 깊숙이 파묻혀 계셨습니다. 셋째 자스민 공주님은 거울을 보며 선크림을 덧바르기에 바빴고, 막내 신데렐라 공주님은 한숨을 푹푹 쉬며 골프화 뒤축을 꺾어 신고 계시더라고요.

 

엘사 공주님 (첫째): "어머, 캐디 언니. 오늘 날씨 왜 이렇게 더워? 나 선크림 세 겹이나 바르고 나왔는데 벌써 타는 것 같아. 언니, 카트 선풍기가 이게 다야? 너무 덥잖아~

 

안나 공주님 (둘째): "언니, 나 오늘 컨디션 최악이야. 그냥 카트에서 대충 치고 들어갈래. 웬만하면 공은 카트 도로 옆으로만 보내줘. 나 잔디 밟고 멀리 걷기 싫어."

 

자스민 공주님 (셋째): "언니, 내 골프백에 있는 양산 좀 꺼내줘요. 나 기미 생기면 책임질 거야?"
시작 전부터 요구사항이 빗발치는데 정신이 훅 나가더라고요. 오늘 18홀을 돌려면 제 다리가 서너 개는 더 필요하겠구나 직감했습니다.
 "최대한 햇빛 안 들게 카트 주차해 드릴 테니, 천천히 준비해 주세요!" 하고 속으로는 눈물을 삼키며 1번 홀로 향했습니다.

 

#2. 전반전, 걷기 거부 운동과 카트 수색 작전
1번 홀 페어웨이는 양탄자처럼 부드러웠지만, 우리 공주님들에게는 그저 넘기 힘든 거대한 모래사막 같았나 봅니다. 드라이버를 대충 툭 치시더니, 공이 페어웨이 왼쪽, 오른쪽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골프의 기본은 각자 자기 공이 있는 곳으로 채를 들고 걸어가는 거잖아요? 하지만 우리 공주님들에게 그런 상식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신데렐라 공주님 (막내): "캐디 언니! 내 공 어디 있어? 저기 멀리 있는 거 (가서 쳐 달라는 눈빛)? 나 저기 언덕까지 걸어가기 다리 아파. 언니가 가져와서 카트 옆에서 치게 해줘”

 

"아…. 네…. 제가 챙겨다 드릴 테니까 요 앞으로 조금만 걸어가 보실까요?"

 

신데렐라 공주님: "아우, 귀찮아. 그러면 언니가 내 공 주워다가 카트 도로 옆에다 던져줘. 거기서 칠래."
진짜로 공을 주워다 도로 옆에 놓아달라고 하시는 바람에, 제가 페어웨이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게다가 채는 또 얼마나 까다롭게 고르시는지 몰라요.

 

안나 공주님: "언니, 7번 아이언? 아, 아냐. 쳐보니까 힘들어. 8번 줘 봐. 어? 이것도 별로네. 고구마 줘 봐, 고구마."
카트에 꽂힌 골프채를 종류별로 다 꺼내 가시면서 정작 본인은 카트 문턱에 걸터앉아 계시니, 저는 채 셔틀 하랴, 떨어진 공 찾으랴,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습니다.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풍경을 즐길 여유 따윈 전혀 없었죠.

 

#3. 그늘집에서의 장기 투쟁, "우리 그냥 집으로 갈까?"
어찌어찌 영혼을 갈아 넣어가며 전반 9홀을 마치고 스타트 하우스(그늘집)에 도착했습니다. 보통은 15분 정도 쉬고 나가야 하는데, 사모님들이 에어컨 바람 아래 자리를 잡더니 아예 일어날 생각을 안 하시는 겁니다.

 

엘사 공주님: "어휴, 9홀 돌았는데 벌써 기운이 하나도 없어. 언니들, 우리 후반전 치지 말고 그냥 여기서 팥빙수나 먹고 집에 가면 안 돼? 나 오늘 땀 흘려서 화장 다 지워졌단 말이야."

 

자스민 공주님: "나도 동감. 오늘 날씨가 좋긴 뭐가 좋아, 햇빛이 너무 세서 눈부셔 죽겠구먼. 캐디 언니, 우리 조금만 더 여기서 쉰다고 해줘."

 

이러시면 안 되거든요! 경기과에서는 뒷조 밀린다고 빨리 나가라고 무전이 빗발치는데, 사모님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제가 중간에서 애가 타서 아주 간곡하게 달래기 시작했죠.

"고객님들~! 후반 코스는 그늘이 많아서 바람도 훨씬 시원하고 걷기 편하셔요! 
후반에 인생샷 찍기 딱 좋은 시크릿 포토존도 있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서 가보시게요. 네?"
거의 유치원 선생님처럼 어르고 달랜 끝에, 겨우 달콤한 빙수를 다 드신 공주님들을 카트에 다시 태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때 이미 제 목은 반쯤 쉬어있었답니다.

 

#4. 후반전, 엉망진창 스코어와 무한 멀리건
후반전에 접어드니 이제는 대놓고 치기 싫은 티를 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공이 조금만 벙커나 러프(풀이 긴 구역)로 들어가면 쳐다보지도 않으시더라고요.

 

안나 공주님: "언니, 나 저 모래 구덩이 들어가기 싫어. 신발에 모래 들어가면 짜증 나니까 그냥 내 공 벙커 밖으로 꺼내 줘. 벌타? 그런 거 우리 사이에 적지 마~ 그냥 '파(Par)'로 적어줘."

 

자스민 공주님: "어머, 나 방금 헛스윙 한 건 안 친 걸로 해줘. 언니, 나 멀리건 세 개만 더 줘라.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공이 날아가는 게 안 보여서 그래."
네 분이 번갈아 가며 "언니, 나도 멀리건!", "나 스코어 방금 더블 말고 보기로 깎아 줘" 하시는데, 나중에는 스코어카드가 거의 소설 책 한 권 쓰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양파(Double Par, 규정 타수의 배를 침)를 하셔도 스코어에는 '보기'나 '파'가 적혀야 공주님들의 심기가 경호되니까요.
제가 공을 찾으러 수풀 속으로 뛰어 들어갈 때마다 뒤에서 
“언니!”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오늘 이 팀이 걸렸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답니다.

 

#5. 눈물겨운 18번 홀 완주와 탈출
드디어 대망의 18번 홀 그린 위. 공주님들은 퍼팅조차 귀찮으셨는지 홀컵에서 3미터나 남았는데도 "언니, 이거 다 컨시드(OK)지? 우리 다 끝난 거 맞지?" 하며 홀아웃을 선언하셨습니다.
신데렐라 공주님: "와, 드디어 끝났다! 오늘 진짜 힘들어서 쓰러지는 줄 알았네. 캐디 언니, 고생했어. 언니가 내 공 잘 주워다 준 덕분에 나 오늘 별로 안 걸었다."

 

엘사 공주님: "그러게, 언니가 눈치가 빨라서 우리가 카트에서 편하게 쳤네. 수고했어~"
클럽하우스에 도착해서 채 개수를 확인시켜 드리는데, 고생했다며 제 손에 팁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시더라고요. 다른 매너 좋은 팀들이 주시는 팁보다 훨씬 값지게 느껴진 건, 제가 오늘 정말 셰르파처럼 그분들을 모시고 히말라야를 등반한 것 같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날씨는 진짜 역대급으로 축복받은 날이었는데, 제 영혼은 아주 탈탈 털린 월요일이었습니다. 골프장에 공을 치러 오신 건지, 카트 드라이브를 하러 오신 건지 모를 정도로 움직이기 싫어하는 공주님 네 분을 모시는 일….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아휴, 퇴근하고 나니 다리가 다 후들거리네요. 너무 힘든 하루였으니 집에 가서 시원하게 맥주 한잔하면서 오늘 일도 함께 날려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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